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
ANYANG PUBLIC ART PROJECT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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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isappearing2

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

김중업박물관은 안양사, 중초사, 제약공장까지 여러 층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 곳이다. 그 중 문화누리관 뒤편은 안양사 중에서도 본존불을 모시는 금당지가 자리했다고 추정되는 곳이자, 남아있는 기둥들에서 볼 수 있듯 유유산업 공장의 일부가 서있던 곳이다. 이렇듯 목격되고 기록되는 역사는 일부분일 뿐, 그 사이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.

작가 배영환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. 특히 서울 농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<수화: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>(2007)은 농아들의 언어인 수화를 가시화시켜 많은 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 설치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한다.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전환하여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. 

작가는 문화누리관 뒤편에 남겨진 24개의 기둥들에 조경과 조형이라는 두 가지 과정을 거쳐 작업을 제작한다. 열주 중앙에 있는 조경은 거북 귀(龜)자 모양으로, 이는 안양사의 큰 규모를 확인시켜 준 귀부(龜趺)에서 출발한다. 귀부는 신라시대부터 사용되었던 비석을 세우기 위한 받침대 사용한 거북이 모양의 돌 조각을 말한다. 하지만 <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>에서 작가는 기둥을 받치는 이 귀부를 눈주목이라는 식물로 쓴 거북 귀 자로 대신한다. 이 글자의 모양은 조선 말기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지운영이 서로 다른 디자인으로 세 개의 거북 귀 자를 암벽에 새긴 삼성산 삼막사의 삼귀자(三龜字)에서 착안했다.

24개의 기둥 중 가운데 줄에 있는 여덟 개에는 새로운 황금색 조형물이 씌어졌다. 기둥들 각각은 수메르 설형문자, 마야문자와 같이 이미 사용되지 않거나 훈민정음, 전통한자와 같이 현재 거의 쓰이지 않아 사라져가는 여덟 개 문명의 문자들로 채워져,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옛 건물을 대변하는 기둥들과 그 운명을 함께한다. 작가는 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에서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. 그 대신, 벽과 지붕 없이 흩어져 있는 기둥들에 사라진 문자를 새겨넣음으로써 그 공간이 품고 있는 흘러간 역사를 추모한다. 

배영환 Bae Young-whan

한국의 근현대화 과정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, 버려지거나 소외된 것에 귀를 기울여온 작가. 80년대 민중미술을 이어받는 동시에 그 한계를 돌파한다고 평가받는다. 예술이 우리의 삶과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<갓길 프로젝트>(2006), <도서관 프로젝트 내일>(2009) 등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인 바 있다. <유행가—엘리제를 위하여>(플라토, 서울, 2012), <불면증>(PKM 갤러리, 서울, 2008), <남자의 길>(대안공간 풀, 서울, 2005)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. 


배영환, <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>, 2014, 철, 불소도장; 눈주목, 높이 30cm, 2200 그루.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(APAP) 커미션.

김중업박물관 마당

본 작업은 김중업박물관 문화누리관 뒤편에 위치해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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